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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부터 독립하기

후흑학,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

by 고독(高獨) 2023. 11. 16.

[신동준 저 / 2011 / 위즈덤하우스]

 

후흑(厚黑)은 두꺼운 얼굴을 뜻하는 ‘면후(面厚)’와 시커먼 마음을 뜻하는 ‘심흑(心黑)’을 합성한 말로 ‘뻔뻔함’과 ‘음흉함’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후흑학은 일반들인들에게는 ‘뻔뻔함과 음흉함으로 생존하는 처세술’인 반면에 통치자들에겐 ‘난세를 평정하는 통치학’으로 활용될 수 있다. [후흑학]은 청조 말(1911년)에 이종오에 의해 출간되어 ‘실리를 위해 도덕을 폐하라’는 파격적인 메시지로 대륙 전역에 화제를 모았으며, 신동준의 [후흑학]은 현대 중국인의 국민성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학문인 이종오의 [후흑학]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책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권세를 동경하고 두려워하며, 권력을 쥐고 있는 자의 말에 복종한다고 하였다. 일반인들에게는 인간의 도리라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강조하며 지킬 것을 권유하고, 정작 기득권자나 권세가들은 그것을 따르지 않고, 겉으로 잘 포장하는 경우들을 많이 보게 된다.

 

후흑학을 연구하는 이종오는 고대부터 영웅이나 세상을 지배한 자들의 비술이 겱코 '인의예지신'에 있지 않음을 오래 전에 간파하였다. 삼국지의 대표적인 영웅인 조조와 유비, 손권 등이 대표적으로 후흑학에 능통했다고 한다. 승패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갈리는 제왕의 처세는 일신의 안위만을 바라는 일반 백성들의 처세와는 그 목적과 방향이 다르다. 이는 직장이나 조직에서 구성원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월급쟁이들과 기업 전체를 이끄는 사장의 행동양식이 달라야 하는 것과 일맥 상통한다. 일반 월급쟁이들의 처세에는 비겁하고 옹졸함이 있어야 기회가 생기지만, 사장의 처세에는 뻔뻔함과 음흉함이 있어야 조직을 이끌어 갈 수 있다.

 

[이종오 저 / 2011 / 인간사랑]

 

원저자 이종오(1879~1944)는 청나라 말기에 광서 5년 중국 사천에서 태어났다. 농부였떤 그의 부친은 9남매 중 유일하게 이종오만 공부를 시켰으며, 그는 사천에서 팔고문의 대가로 알려진 노단에게 수업을 받은 후 성도고등학당에서 수학했다. 학업을 마친 후에는 손문이 결성한 동맹회에 들어가 활동했으며, 신해혁명이 일어난 1911년, 성도의 에 [후흑학]과 [흐흑경], [후흑전습록]을 연재해 독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1912년부터 몇 해 동안 사천성 관원으로 일했으며 이때부터 자신을 ‘후흑교주’라 부르며 제자들과 함께 ‘후흑국’ 건설에 나섰다.

 

그 이후 1936년 북경에서 [후흑학]이라는 제목으로 책으로 묶여져 다시 한 번 중국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이종오는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타계할 때까지, 일제와 서구 열강의 칩입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후흑’의 길밖에 없다며 왕성한 집필활동을 보였다.

고전 속에서 기업경영 및 자기계발에 대한 의미를 찾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온 저술가 신동준 선생은 이종오의 [후흑학]의 요점을 매우 치밀하고 정밀하게 핵심만 정리하여 소개하고 있고, 21세기에 맞게 재정비하여 글로벌 전쟁터에서 고군분투하는 기업의 총수, 임원, 상사와 부하직원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처세술에 대해 9개로 정리하여 소개한다. 그 9개는 다음과 같다.

01. 공(空) - 위기에 빠져나갈 퇴로를 만들라.

02. 공(貢) - 반룡부봉하되 역린을 조심하라.

03. 충(沖) - 호언장담으로 기선을 제압하라.

04. 봉(捧) - 박수갈채로 자부심을 만족시켜라.

05. 공(恐) - 솜에 바늘을 숨기고 때를 노려라.

06. 송(送) - 비자금을 활동자금으로 활용하라.

07. 공(恭) - 사람을 가려 때에 맞게 칭찬하라

08. 붕(繃) - 큰 인물로 포장해 신뢰케 만들라.

09. 농(聾) - 귀머거리 흉내로 속셈을 감추라

책 속의 나머지는 후흑학의 탄생과 의미에 대해 기술한 것(1부. 후흑학, 난세의 처세술)과 역사의 인물 중 후흑학 대가들의 사례(2부. 역사의 승자, 후흑의 대가들)를 들어 그의 성공담을 담았으며, 마지막으로 끝까지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살아남으려 고군분투하는 이 땅의 직장인들을 위한 메시지(4부. 후흑으로 오늘에 답하라)를 전달하는 것으로 채웠다.

흥미로운 것은 후흑학 고수의 단계를 3단계로 표현하며 단계별 특징을 설명하는 것과, 삼국지에 나오는 영웅뿐만 아니라 장개석, 모택동 등 근현대의 인물과 김대중, 노태우, 노무현, 이명박 등 우리나라 정치인에 대한 평가도 견들여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의미있게 되새겨 봐야 할 것은 현재 직장이나 조직에서 살아남기 이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상사나 부하직원들의 처세술에 대한 의미를 깨닫고 실천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고 정리하는 차원에서 저자가 이야기 하고 있는 상사와 부하직원의 처세술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상사의 처세술

현군은 마음을 비우고 고요히 상대를 지켜봄으로써 신하가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게 하고, 이후 그에 따른 책임을 지워 자연스럽게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한다. 마음을 비우면 상대의 실정을 알 수 있고 고요히 지켜보면 그 행동의 시비를 알 수 있다.

군주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드러내서는 안된다. 군주는 자신의 뜻을 드러내서도 안 된다.

군주가 호오를 드러내지 않으면 신하는 이내 속마음을 드러내고 지혜와 재주를 드러내지 않으면, 신하는 이내 군주를 헤아릴 길이 없어 스스로 대비하게 된다.

 

- 부하에게 의중을 보이지 마라

- 부하의 재능을 적극 활용하라

- 부하를 널리 포용하라

 

세상의 모든 것은 마치 세월이 그렇듯이 쉼 없이 바뀌며 순환하기 마련이다. 어제의 황제가 내일의 필부가 될 수도 있고, 오늘의 필부가 내일의 황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부하의 처세술

상대가 어떤 허물이 있을 때 예의를 언급하며 그 잘못을 들처내면 신변이 위험하다. 상대가 어떤 계책을 얻어 이를 자신의 공적으로 삼고자 할 때 그 내막을 알게 되어도 신변이 위험하다. 상대가 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권하거나 그만둘 수 없는 일을 억지로 그만두로록 권할 경우도 신변이 위험하다.

 

무릇 유세의 요체는 상대가 자랑으로 여기는 것을 은근히 칭찬하고 부끄럽게 여기는 것을 은근히 덮어주는 데 있다. 상대가 급히 하고 싶어하는 일이 있을 때는 공의로써 이를 드러내 장려하고, 상대가 자신의 지혜와 재능을 자랑하고 싶어 할 때는 모르는 척하며 상대의 지혜가 돋보이도록 도와준다. 상대를 칭송할 때는 직접 칭송하는 대신 유사한 예를 들어 칭송하고, 과실을 지적할 때는 직접 지적하는 대신 다른 사례를 들어 충고한다. 상대가 자신의 역량을 자랑할 때는 굳이 다른 어려운 일을 예로 들어 그가 남과 같다는 것을 밝혀서는 안 된다. 상대가 자신의 결단을 자랑할 때는 굳이 그의 잘못을 지적해 화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상대가 자신의 계책을 현명하다고 여길 때는 굳이 실해한 사례를 들어 궁지에 몰아넣어서는 안된다.

참으로 뻔뻔하고 음흉한 세계는 깊고도 경이롭다.